살아가는 이야기

예슬이 똥누는 이야기

가행 2015. 2. 5. 15:37

예슬이가 며칠 전 똥을 누려다가 똥덩이가 너무 크고 단단해 고생을 했습니다 돌덩이 같은 덩어리가 항문에 걸려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않는 바람에 아이는 온몸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고통스러워 하였지요. 급기야 예슬이는 "너무 아파, 못 참겠어"하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습니다. 똥꼬에 기름을 발라주고 면봉으로 후벼파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지요.
저도 어찌할 줄 몰라 안절부절인데, 아이가 "엄마, 기도해줘" 하더군요. 변기에 앉아 용을 쓰고 있는 아이를 안고 순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 우리 예슬이 안 아프게 해주세요. 응가가 어서 쑥 잘 나오게 해주세요." 하고 소리내어 기도해줬지만, 마음 한구석 '이 기도가 맞는걸까'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습니다. 그날 결국은 똥꼬에 걸려있던 똥덩이를 도로 밀어넣고 똥누는걸 포기하고 말았지요

다음날 아이는 다시 변기에 앉았습니다. 아이가 다시 저에게 부탁하더군요. "엄마, 기도해 줘야돼."
이번엔 아이를 안고 큰 소리로 조금 다르게 기도해주었습니다 "우리 예슬이가 이 아픔을 잘 견뎌내게 해 주세요. 많이 아프지만 잘 참고 응가를 쑥 밀어낼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똥꼬가 찢어지는 것 같아." 아이는 전날처럼 많이 아프고 힘들어 했지만 땀으로 범벅이 되면서도 울지는 않더군요 똥꼬에 단단하게 걸린 똥을 면봉으로 여러번 후벼 파주고 아이가 적절히 힘을 쓸 수 있도록 옆에서 격려해주는 과정을 거쳐 아이는 마침내 커다란 똥덩어리를 쑤욱 밀어낼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언제 아팠냐는 듯 씨익 웃으며 "이젠 괜찮아"하더군요.
"그래, 정말 잘 했어."하며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찾아 참빛이라는 울타리 안에 모였습니다
신입 모임에서 아이들 한 명 한 명 한없이 맑고 천진한 얼굴을 보며 문득 우리가 아이들에게 안겨주고 싶은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 되짚어보게 됩니다
예전엔 좀더 쉽고 편안한 삶이 행복한 삶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쉽고 편안한 삶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걸...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극복해야 할 자기 삶의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 과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깎아내는 아픔을 견뎌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과정은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마침내 내 안의 과제를 넘어섰을 때의 기쁨과 감사. 그것은 나를 한층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어줍니다
땀으로 범벅된 얼굴로 힘겹게 똥덩이를 밀어내고 씨익 웃는 딸아이의 표정에서 느낄 수 있었던, 말할 수 없는 기쁨. 그것이 바로 참 행복이라 여겨집니다
참빛 안에서 아이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에게 적응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어쩌면 그리 쉽고 편안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분명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배우고 있으며 스스로 성장해 가고 있음을 우리 모두 믿어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숨겨진 귀한 보물과 행복을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는 내 아이가 자기 몫의 아픔을 피하기 보다 그 아픔을 잘 견뎌내면서 그 속에 빛나고 있는 귀한 보물을 하나 하나 발견해 가기를 기도합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도와주고 격려해줄 귀한 친구와 이웃을 만나게 되어 참 기쁘고 감사합니다  

 

2014.2.9